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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동반자살 , 아이들의 의견은 없는 그 죽음들에 대한 이야기

flow-away 2021. 7. 16. 18:47

이번주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의 주제가 주제인 만큼...

자극적인 내용 또는 단어들이 포함되어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없어져야 할 단어인 동반자살.

저도 이번 꼬꼬무를 보기 전까지는 잘못된 표현이란걸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방송을 보는 순간..아...이 단어는 이 세상에서 없어져야겠구나 싶었습니다.

 

맞죠. 자식을 데리고 죽는다는걸 동반자살이라고 표현하면 안되는거죠.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아주 오랜기간동안 써왔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앞으로는 절대 쓰지 말아야할것이고...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럼...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이야기는 하루동안 벌어진 두가지의 사건을 통해 시작됩니다.

1974년 어느 날...

한 가정집에서 죽어있는 아버지와 아들, 또 다른 시간에 가정집에서 벌어진 인질극...

 

처음에 저도 보면서 아무런 상관이 없는? 어쩌면 인질범이 부자를 죽이고 달아난 범인일 수도 있겠다는?..그런 생각을 했었지만 저의 상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는 흘러가기 시작합니다.

 

이 남자들의 이름을 따로 언급하고 싶지 않아서 그냥 문씨와 이씨로 칭하겠습니다.

 

인질범인 이씨에 의해 밝혀진 그들의 끔찍한 범죄.

그들은 2년전, 그러니까 1972년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었던 카빈 강도 2인조였습니다.

(여기서 카빈이라는것은 총의 한 종류입니다)

 

강도짓을 벌여 돈을 빼앗고...심지어는 목숨까지 빼앗은 문씨와 이씨. 

경찰들이 아무리 잡으려고 애를 써도 잡히지 않았던 그들은 결국 잡힐것같은 느낌이 들었는지 순간적인 결심을 하게됩니다.

바로 죽음이죠. 죽음으로서 그들의 죄를 회피하려고 했었던것입니다.

 

그러나...여기서 또 다른 선택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었습니다.

 

벼랑끝에 몰렸다고 생각한 문씨는 죽을 결심을 하지만...그의 저승길에는 이씨가 아닌 자신의 아들이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런 죄도 없는 어린 아이. 그것도 친아들...

 

이씨는 이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문씨를 떠나 자신의 집으로 향했고...

문씨는 오랜만에 만나 반가워하는 아들을 데리고 2층으로 올라가...죽음을 선택합니다.

받을 죄를 받지 않고 끝까지 도망을 선택한 문씨.

 

이것이 바로 앞서 설명했던 부자(父子)살인사건입니다.

문씨는 죽어마땅했던 인간이었지만 그의 아들은 도대체 무슨 죄가 있었을까요...

아직 7살의 어린 나이에...아버지를 만나 기뻤을 그 순간에 아들의 가슴에는 총알이 박혔습니다.

이기적인 한 남자의 선택으로 채 꽃피우지 못한 아이의 인생이 그렇게 막을 내렸습니다.

 

그리고...또 하나의 이기적인 선택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같은 날 발생했던 가정집 인질사건...이 또한 이기적인 선택의 끝이었습니다.

이 인질범의 정체는 문씨를 두고 떠났던 이씨였고...그는 자신의 가족들을 인질로 삼았습니다.

 

진짜 문씨도 썩을놈인데 이씨는...욕이 더 튀어나오더라구요. 아니...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이해가 되지 않는 인간의 표본이었습니다.

 

아버지가...남편이 갑자기 총을 꺼내들고 자신들을 인질로 삼아 죽이니 살리니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때 얼마나 공포스러웠을까요. 아내와 아이들이 도대체 무슨 죄가 있기에ㅠㅠㅠㅠㅠ

 

17시간을 경찰들과 대치하면서 자신의 죄를 술술 이야기하고, 어디에 시체를 묻었는지까지도 이야기했으면서 끝내 자수는 하지 않았던 이씨..

이야기를 듣는 내내 정말 현실 욕이 튀어나왔습니다. 

 

자신의 범행을 다 이야기했던건지...끝내 그는 마지막 선택을 합니다. 

 

그리고 그 썩을놈은 뭘 잘했다고 유서까지 남겼습니다.

저도 게스트분처럼 왜 저딴 놈의 유서를 듣고 다시 글로 남겨야하나..싶었는데 이씨가 얼마나 최악의 인간이었는지를 잘 알 수 있었던 글이어서...

 

게다가 자신의 아이를 죽이고 자살을 꾀하는 부모들의 심리가 이렇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태양아 큰별아 미안하다.

여보 당신도 용감했소.

너희들 뒤를 따라간다.

 

황천에 가서 집을 마련해서 호화롭게 살자.

 

이 냉혹한 세상 미련없다.

 

이 냉혹한 세상이라니...자기가 잘못살아서 세상이 냉혹해진건 생각도 못한건지...

자신한테만 냉혹하지 아내와 아이들에게는 따뜻했던 세상이었을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런 선택을 함으로서 앞으로의 미래를 없애버릴 수 가 있었는지 참..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심지어는 이들에 대한 선택이 어쩔 수 없었다는 식의 이해를 강요하는 듯한 기사도 그 당시에는 났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자식을 죽이고 자살을 택하는 어른들의 이기적인 행태에 자주 쓰이는 프레임이기도 하구요.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수많은 이런 식의 죽음들이 있었는지...

기사로 난건 수백건에 불과하지만 어쩌면 기사로 나지 않은 더 많은 이기적인 죽음들이 더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동반자살" 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진것에 사람들의 책임만을 물을 수 없는것이 법적으로도 자식이 부모를 죽인 경우와 부모가 자식을 죽인 경우가 처벌이 확연하게 다르다는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법쪽으로는 무지한 편이라 존속살인의 형벌이 어느쪽이 어느쪽을 죽였건간에 똑같이 처벌을 받는 줄 알았는데....그게 아니었습니다.

 

자식이 부모를 살해했다면 최소 7년 이상의 처벌을 받지만, 반대로 부모가 자식을 죽였을때는 가중처벌을 받지 않는것도 모자라 감형을 받는 경우가 있다는것입니다.

 

세상이 말하는 그 "얼마나 힘들면 그랬을까..오죽하면 그랬겠냐.."가 법에서도 통할줄이야....

 

왜 자식을 죽인 부모에게는 죄를 더 할수없는걸까요? 뭐가 그렇게 달라서...

 

정말 이런 이유때문에? 우울증? 육아스트레스? 불우한 가정환경?....

그럼 대한민국에는 절반의 사람도 남아있지 않았을겁니다. 

어린시절의 좋지않은 기억으로...우울증으로...빚문제로...이건 다 어른들이 만들어낸 이유입니다.

 

이 이기적인 이유에 어린아이들이 희생될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내 자식이니까, 내가 낳았으니까..나 없는 세상에서 살아갈 아이들이 불쌍하니까...

모든 이유가 다 어른들에 의해서 만들어진것이고 그 어디에도 아이들의 의견은 없습니다.

 

이렇게 이기적인 죽음이 또 어디있겠습니까.

 

"동반자살" 이 네글자로 설명이 될 죽음이 아닙니다. 

 

그 어디에도 아이들의 의견이 없는데, 왜 동반자살입니까.

 

이것은 명백한 살인입니다.

 

 

 

 

 

우리가 무심코 써왔던 이 단어가 바로 세상에서 없어져야 할 단어였습니다.

앞으로 두번 다시 이런 단어를 써서는 안될것이고, 쓰는 일이 있어서도 안될것입니다.

 

이번 꼬꼬무를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눈물도 많이 흘렸던 회차였습니다.

 

만약 이번 꼬꼬무를 보신다면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보시는것이 좋을것같습니다.

그 시절의 사진들이나 동영상이 보여지는 장면들이 있기때문에 조금 충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어느 한 판사님의 판결문으로 이번 꼬꼬무 이야기를 마무리 할까 합니다.

 

 

우리는 살해된 아이들의 진술을 들을 수 없다.

 

동반자살은 가해부모의 언어다.

 

아이의 언어로 말한다면 이는 피살이다.

 

법의 언어로 말하더라도 이는 명백한 살인이다.

 

"동반자살"이 아니다.

 

동반자살이라는 단어에 숨겨진 우리 사회의 잘못된 인식을 걷어낼 필요가 있다.

 

참담한 심정으로 애통하게 숨져간 아이의 이름을 다시 부른다.

 

이 이름이 "동반자살"이라는 명목으로 숨져간 마지막 이름이기를 희망한다.

 

얼마나 더 많은 아이들이 죽어야만 그런 세상에 도달할 수 있을까.

 

얼마나 더 많은 아이들이 살해되어야 하는가.

 

아직도 숫자가 부족한가.

 

세상을 일깨우기 위한 희생은 최초의 한 아이만으로도 이미 충분했다.

 

부족한건 언제나 행동뿐이다.

 

 

 

 

부디 더는 이런 일이 더이상 일어나지 않기를....